Thursday, June 25, 2015

하드웨어의 헐리우드 꿈꾸는 선전을 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VC를 하고 있는 지인을 재작년에 타이페이에서 만난 적이 있다.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선물이 있다며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PCB모듈을 하나 꺼내 준 적이 있다. 자신이 투자한 스타트업이 심천에서 만든 엄지손가락만한 아두이노 호환보드라며 침튀기게 자랑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을 투자하기 때문에 매달 한번은 심천을 들러야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그때는 흘러들었는데 그 보드가 Spark core란 이름으로 전세계 개발자들에게 배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Makerbot의 창업자 중 한명인 Zach Smith와 함께 타이페이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뉴욕출신인 Zach가 심천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고 중국에 거주한지 2년밖에 안된 친구가 유창한 중국어로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왜 심천에서 사느냐, 그리고 왜 중국어로 발표를 했느냐는 질문에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선 심천만한 곳이 없고 정말 역동적인 곳이며, 중국어를 할 수 있어야 진짜 중국에서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두 이야기의 묘한 공통점으로 등장하는 심천이 최근 국내에서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도시마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제조업중심의 한국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이렇다 할 경쟁력을 만들고 있지 못한 시점에 어쩌면 당연한 관심이 아닐까도 싶지만 정작 심천은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도시가 아니다.                                                                                                                                                                    

심천은 중국의 경제특구 1호이다. 1979년 덩샤오핑이 중국 개혁개방의 전진기지로 홍콩과 마카오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물류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채 20Km가 안되는 거리에 있던 심천을 중국 최초의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을 하고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과 혜택을 쏟아부은 곳이다. 그로인해 지금은 상하이, 베이징과 함께 경제규모에 있어 중국의 3대도시로 성장을 한 곳이다. 심천은 지리적으로 홍콩과 매우 가깝다보니 세계의 공장으로 중국이 성장을 하기 시작한 시기를 이끌었고 제조는 심천, 물류와 금융은 홍콩으로 나뉘어 다양한 세제혜택과 저렴한 생산/물류비를 기반으로 전세계 글로벌기업들의 제조공장 800개 이상을 심천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이 공장들을 중심으로 중국기업들의 제조인프라가 함께 만들어지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대략 6000개정도에 이를 정도로 심천전체가 대규모 제조생태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두시간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광저우, 동관, 후이저우까지 그 규모가 확장되어 지금은 이 지역전체가 심천과 유사한 제조 클러스터가 되었으니 그 규모는 이미 경쟁상대가 없는 수준이다. 


심천국경에 가면 커다란 광장을 가운데 두고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 3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가히 대륙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건물들인데 하나는 배로 심천을 들어가는 심천항, 다른 하나는 버스로 심천을 들어오고 내륙으로 연결되는 심천버스터미널, 마지막 하나는 기차로 들어오고 나가는 심천역이다.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허브의 역할을 하다보니 규모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고 다양한 상품들이 거쳐 움직이는 관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 곳이 바로 로후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짝퉁시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후는 전세계 모든 브랜드가 다 유통이 되는 산짜이의 본고장으로 악명이 높고 지금도 로후시장에 가면 단속을 피해 수많은 짝퉁들이 유통이 되고 있다. 보통은 지갑, 가방, 시계같은 고가 브랜드 제품부터 전자제품, 패션, 의약, 귀금속까지 그 영역은 가히 한계가 없는데 중국이 가진 카피본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요즘은 대만의 공차가 유명해 백화점 및 거리에 공차매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심천에선 이 공차를 거의 똑같이 베낀 굿차매장을 공차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어 그 베끼는 본능이 어디까지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뻔뻔함을 비판하는 시선도 무척 많지만 중국은 염치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그들의 인식과 문화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베껴서 만들면 싸게 팔수 있는 시장이 있는 한 이러한 카피문화가 쉽게 사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며 눈치를 보기보단 만들어내는 실행을 우선시 하다보니 자연스레 시장은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의 구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심천의 짝퉁제품들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당장 주인이나 점원이 달려나와 사진을 찍지못하게 제지하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다. 우스운 사실은 자신들도 베겼으면서 왜 사진을 못찍게 하는지 현지인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들이 베끼긴 했어도 시장성이 있고 좋은 제품을 찾는데 꽤 많은 노력을 들였고 게다가 베끼느라 나름 공을 들였는데 그런 것들만 또 베끼는 2차, 3차 짝퉁메이커들이 있어 그것을 막기위해 사진을 못 찍게 한다고 한다. 








베낀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게 될까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시장 논리이며 자유경쟁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이러한 경쟁이 있으니 자연스레 모조품끼리도 차별화를 위한 몸부림이 있고, 이를 극복해 낸 회사들이 모조품이란 딱지를 떼고 글로벌 경쟁의 무대로 올라가는 경우도 목격하게 된다.

조본업이나 핏빗 같은 웨어러블 밴드만 해도 수천 가지를 이미 팔고 있다. 가격도 만 원대에서 몇 만 원대까지 오리지널 제품의 10분의 1에서 5분의 1 가격의 제품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도 이런 극단의 차별화 사례를 볼 수 있다. 밴드에서 액티비티 트래커 모듈이 분리되는 것까지는 기존의 다른 제품들과 똑같은데 귀걸이가 있어 필요할 때는 핸즈프리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도 있다.

삼성 갤럭시 기어나 애플워치를 베낀 제품들은 어떤 매장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는 다르겠지만 하드웨어 등 겉보기는 구별이 안 되는 제품들이 4~5만원에 팔리고 있다. 거기에 직접 SIM카드를 삽입해 전화까지 걸 수 있는 제품도 만 원만 더 내면 살 수 있다.

베끼기는 했지만 뭔가 하나가 더 있고, 겉은 베꼈지만 나머지는 자기들 마음대로다. 우리는 시장을 따지고 염치를 따지고 비용을 따지느라 머리 속으로만 하던 일들을 중국은 그냥 베껴보고 만들어 보고 팔아본다.

좋다고 따라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데 덕분에 중국은 분석하고 만들고 팔면서 경쟁하고,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무서운 점이다. 중국의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애플을 열심히 베끼던 샤오미는 몇년 만에 어느덧 중국에서 삼성을 제치고 거대 스마트폰 회사로 성장했다. 지금은 배터리 팩에서 통신장비, 사물인터넷 기기까지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런 모조품의 문화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많은 외국의 기업들이 선전에 들어와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드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자연스레 선전의 생태계로 녹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생태계 인프라를 이용해 시장이 있는 곳에 그들의 실리가 동작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중국 최대의 전자상가인 ‘화창베이’ 같은 곳이 탄생 했다. 그 곳에서 그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제품과 기술을 녹이고 중국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부품을 수급하고 공장을 섭외하여 생산하는 모든 것들이 단계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화창베이, 알리바바 통해 세계로 연결
화창베이는 마치 1980년대 말 세운상가나 1990년대 중반 용산전자상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가게마다 활기가 넘쳐서 규모면에서는 우리 용산전자상가의 30~40배 정도지만, 체감상으로는 조금 과장하면 100배정도 키워놓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화창베이에서 못 만들면 세상에서 못 만든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어떠한 제품이라도 만들어 낼 인프라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구형 전자부품, 전선, 커넥터, 배터리, LED, 메모리, CPU류에서부터 SMD부품, 블루투스, 통신모듈, 디스플레이, 센서, 모터 등 없는 부품이 없다.

또 아주 적은 수량에서부터 대량까지 모든 종류의 수급이 가능한 곳이다. 부품상가의 거의 모든 곳에서 PCB제작이나 시제품 제작, SMT(표면실장기술, 부품의 자동조립)를 해주는 업체들이 즐비하다. 전국에서 젊은 친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들다 보니 인건비가 저렴하고, 어떤 단순한 일이든 아주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자연스레 만들어져 있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한다는 말이 어쩌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품질은 아주 조악한 수준에서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고품질 프로세스가 공존하고 있다. 중국의 다른 도시들처럼 젊기 때문에 위험요인을 고려해 주저하기 보다 얼마나 이익을 볼 수 있느냐가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예전의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와 중요한 차이점은 배후에 알리바바가 만들어 놓은 막강한 글로벌 유통채널이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와 유통시스템을 통해 연결, 속도나 가격, 물량이나 품목에서 전세계를 장악할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메이커 문화, 크라우드 소싱,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같은 트렌드가 선전의 역할과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전 세계가 다품종 소량 생산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고 DIY와 공유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점에 주목한 언론들은 이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메이드 위드 차이나(Made with China)’의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선전의 지인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 ‘이노베이트 위드 차이나(Innovate with China)’라고 말한다. 혁신하려면 중국의 힘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최근 애플은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골드컬러를 기본으로 하고 중국인들의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을 탑재하는가 하면 선전의 애플스토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걸 보면 중국의 시장이 만들어 낸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의 시대가 함께 열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먼저 감지한 핵스(HAX), 하이웨이1 등 하드웨어 전문 액셀러레이터들은 선전에 본거지를 두고 세계의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을 중국 선전으로 데려와 저렴하고 빠른 인프라 환경에서 최고속으로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또 사업화와 시장성을 검토해 미국이나 유럽시장에서 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 예로 든 스팍(Spark)도 핵스의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으로 펀딩과 프로토 타이핑을 한 회사다. 선전에 거주하는 잭도 핵스의 멘토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걸 보면 이 플랫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운영되면서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핵스의 창업자인 셰릴은 곧 핵스를 떠나 유럽에 이 인프라를 연결할 또 다른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핵스는 핵심파트너인 벤자민과 던칸의 주도로 더 막강한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가 되기 위해 선전을 활용하고 있다.

사실 선전의 빼놓을 수 없는 진짜 경쟁력은 사람이다. 훌륭한 인프라에 이를 실행하고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은 배가되고 가치는 상승한다. 중국은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장사치가 있고 이야기한 것과 결과가 다른 케이스들도 빈번하다. 돈만 날리고 언어.문화 장벽으로 제대로 된 결과를 못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게 장밋빛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선전의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드스튜디오(Seeed Studio)도 그 중 하나이다. 보통 무언가를 만들고자 할 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 특히 하드웨어는 비용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시드스튜디오는 선전의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든 에릭이란 친구가 2008년 만들었다. 품질이 검증되지 않고 경험도 부족한 메이커와 중국 선전의 제조경쟁력을 연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시드스튜디오라는 플랫폼으로 실현됐고, 2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280명의 직원이 일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시드스튜디오는 경험이 부족한 메이커들을 도와 제조 프로세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


이곳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초기 설계부터 10~1000개(최대 10000개)의 소량 생산을 도와준다. 시드스튜디오 안에 소규모 생산 설비부터 개발, 검증 부서까지 다 갖춰져 있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배치가 높은 수율로 돌아가고 있다. 시드스튜디오의 경쟁력은 설비와 저렴한 비용만은 아니다. 소량생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스와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표준 부품, 처음부터 생산까지 관리하고 도움을 주는 ‘PM(Project Manager)’이 차별화 포인트다.

이들은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해 준다. 또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실제 시드스튜디오의 설비들은 삼성의 작은 협력사 제조설비보다 낡고 규모도 작지만 좋은 설비를 갖추고 단순히 제조만 해주는 기업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시드스튜디오의 에릭에게 10년 후 선전과 그 안에서의 역할을 물었다.

“10년 후 선전은 전 세계 하드웨어의 혁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는 하드웨어의 할리우드가 될 것이다. 시드는 거기에 하드웨어의 픽사 같은 회사가 되고 싶다.”
단순한 기능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서비스와 가치의 하드웨어로 진화할 것을 바라고 있으며 이 같은 가치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최대 드론기업인 DJI도 선전에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드론이 아니라 드론을 통한 새로운 콘텐츠와 서비스 그리고 재미있는 가치라는 점은 큰 시사점을 준다.

대만 폭스콘의 테리궈 회장을 중심으로 한 ‘선전웨어’란 플랫폼도 본격적인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선전의 강점인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더 강한 경쟁력을 만들고 거기에 추가로 피플웨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야망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아시아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은 물론 이를 중국에 연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은 여전히 실리를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들을 베끼고 있다. 이제 그들이 베끼는 것은 제품이나 디자인이 아닌 실리콘밸리를 만든 에코시스템, 할리우드를 만든 플랫폼들을 모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조를 능가하는 에코시스템과 플랫폼을 만들게 될 지도 모른다.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국의 모방을 비판하는 것 보다 더 시급한 일이다. 선전발 중국의 하드웨어 혁신은 이미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든 함께 하고 협력해 우리만의 가치를 만들고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앞으로 10년, ‘하드웨어 헐리우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우리의 전략과 고민이 시급한 것이다.





머니투데이 테크M 기고글
출처: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52811082655543&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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